일곱번째 닻 없는 날,
나는 가끔 이방인이 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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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이방인이라 느끼는 삶이 외롭고 버거워 토박이를 꿈꾸는 나지만, 가끔 아니 꽤 자주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자처한다. 바로 여행을 가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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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든 해외든 일상을 떠날 수만 있다면 그 자체로 행복을 느낀다. 내가 선택한 이방인의 삶이란 꽤나 즐겁다. 자유의지로 어딘가에 매이지 않는다는 것은 큰 행복이기 때문이다. 삶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음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제되지 않는 삶의 순간순간을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 하지만 여행할 때만큼은 이런 강박적인 성격을 지워낼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도 즐겁고, 대안이 없어도 그저 좋다. 나는 어차피 이 곳에 속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인걸까? 마음에 들면 머무르고, 싫으면 떠나면 된다. 삶에서 한발짝 떨어져 관찰자로서 하루하루를 바라보는 느낌이 좋다.
또한 나는 성격적으로 호오(好惡)가 분명한 편이 아니다. ‘좋은 게 좋지’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이건 좋아!, 이건 싫어!’를 표현하는 게 어렵게 되었다. (덧붙이자면 최근에는 조금 달라지긴 했다. 좋고 싫음을 명확하게 표현하며 살자고 다짐한 이후부터는 꽤 잘 표현하고 있더라. 싫다고 말하는 것에 소질이 있음에 스스로 놀랐다.) 그러나 여행지에서는 다르다. 좋고 싫음이 명확해진다. 어차피 잠시 머물다 떠날 이방인이기에 내 선택의 책임이 크지 않다고 생각해서일까? 여행지에서는 내 삶에서 조금 떨어져 나를 분리해낸다. 현재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순간을 슬슬 둘러보고, 좋으면 슬쩍 더 들여다보고, 싫으면 금세 떠나버린다. 적당한 거리와 담백한 이 관계가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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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도 처음부터 여행을 온전하게 ‘관찰자로서’ 즐기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관광지에서도 늘 가장 바쁜 한국인답게 계획한 모든 것을 해내야만 직성이 풀렸고, 3만보는 걸어야 제대로 여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휴양지에서 가만히 누워 있을거면 대체 이 먼 곳까지 왜 오는 걸까 하는 생각에 쉼이 목적인 여행지는 선택지에도 없었다.
이 생각이 바뀌었던 것은 이십대 초중반에 다녀온 베트남 여행을 통해서였다. 빡빡한 도시가 아닌, 처음으로 가본 나름의 휴양지였는데, 짧은 일정에도 두 개 도시 곳곳을 탐방할 계획을 촘촘하게 세워놨었다. 그리고 계획대로 열심히 쏘다니다가 너무 지쳐버린 어느 날 아침, 즉흥적으로 그날의 일정을 모두 취소해버렸다. 침대에 누워 한숨 돌리니 호텔 창밖으로 펼쳐진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오션뷰를 택했음에도 늘 이른 아침에 나가 늦은 저녁에 돌아오니 여기가 오션뷰인지 주차장 뷰인지 알 겨를이 없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바다를 보고 또 즉흥적으로 수영복을 입고 달려갔다. 자칭 물개인데 어째 그때까지 바다에 뛰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바다를 실컷 즐기고 썬베드에 누워 좋아하는 노래를 틀었다. 습한 열기와 바닷바람이 밀려들었고 온몸은 모래 투성이었는데 오히려 좋았다. 맥주를 마시며 한동안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쓸데없고 하릴없는 생각이라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얼굴을 스치는 바람과 평온했던 마음은 잊히지 않는다.(그날의 온도, 습도, 바람, 햇빛...)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 특별한 일을 찾기 위해 애쓸 필요조차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행기까지 타고 먼 휴양지를 찾아가는 거였구나. 그제야 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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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여행 경험이 쌓이고 나이를 먹으며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지금은 어떤 여행이든 그 경험 자체를 더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내 나름대로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즐기는 거다. 요즘은 삶에서도 이런 태도를 유지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김영하 작가님의 <여행의 이유>에서 본 구절을 인용해보면, 인류는 오래전부터 인생이 여행과 닮았다고 생각해왔다.
“어디에선가 오고, 여러 가지 일을 겪고, 결국은 떠난다.
우리는 여행자로서 지구라는 별에 도착한 것이다.”
사실 우리는 늘 여행을 하고 있는 이방인인 것이다. 지구의 승객인 인류는 영원히 머물 수 없다. 왔다가 떠나는 존재다. 나는 내 삶이 늘 이방인 같다고 생각하기에, 가끔 내가 이 세상에 받아들여진 존재인가에 대한 고민을 한다. 그런데 그냥 우리 모두가 잠깐 머물다 떠나는 사람일 뿐이고, 한번이라도 행복했던 기억, 머물고 있는 사람들에게 환대 받은 기억이 있다면 그 기억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것 같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어차피 잠깐 머무르고 떠나갈 인생, 낯선 여행지에서 이방인의 삶을 즐기는 것처럼 일상의 내 삶에서도 ‘이방인이면 좀 어떠하랴. 최선을 다해 즐기고 떠날테다’ 다짐하게 된다.
결론은, 여행하는 이방인인 내가 좋다는 것이다. 여행할 때는 현재의 순간에 충실한 그 느낌이 참 좋다. 여행은 과거로부터 떠나 있고, 미래도 애써 보려 하지 않는 몇 안되는 순간 중 하나이다. 이렇게 내 삶의 전반적인 태도를 ‘여행하는 이방인’으로 견지하자고 다짐하며 마무리 해보려 한다. 늘 여행하는 사람처럼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자. 현재의 내가 행복할 수 있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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