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타키나발루에 다녀왔다. 연휴를 이용한 5일 간의 여정은 꿀 같았다. 말레이시아 대표 휴양지다운 아름다운 풍경에, 싼 물가, 좋은 리조트... 어느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없었다. 물놀이를 환장하게 좋아하는 내게 코타키나발루는 정말 천국이었다. 돈을 벌게 된 후 세번째로 떠난 동남아 휴양 여행이었는데, 그 중 최고였다.
첫 날 떠난 섬투어. 더워서 그런가? 유난히 짜던 바닷물. 말미잘 사이를 헤엄치던 니모. 매일 밤 받았던 고급 스파 마사지. 침대에서 세 발짝 걸어 나가면 멋드러지게 펼쳐지던 오션뷰. 다양한 수심을 가진 크나 큰 수영장들. 매일 아침 졸린 눈 비비며 먹었던 조식. 물놀이 후 먹었던 꿀맛 같은 컵라면. 이틀 간의 폭우 뒤에 겨우 볼 수 있었던 세계 3대 석양이라는 코타키나발루의 선셋. 그리고 남은 건 새까맣게 타버린 피부와 말랑말랑해진 근육이다.
여행이란, 이방인이기를 선택하는 것
여행은 익숙한 장소, 반복되는 일상을 떠나 낯선 곳에서 지내겠다는 결정이다. 그러니까, 기꺼이 이방인이 되기로 결심하는 행위인 것이다. 직장인이기에 이방인으로 살 수 있는 기간은 길지 못하다. 스스로 선택한 이방인으로서의 5일이 어찌나 귀하고 즐거웠던지. 이방인이라는 정체성이 늘 어렵고, 방황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방인이라서 맘껏 즐기고 양껏 행복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는 걸 여행을 떠나면 알게 된다.
결국 이방인이라서 힘들다는 감정은 내 상황에 따른 것이다. 익숙해야할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곳에 영 마음을 붙이지 못한다는 게 나를 이방인으로 만든다. 회사에서의 나는 늘 이방인이다. 하루 8시간 동안 나는 꽤 외롭고, 꽤 심란하고, 꽤 걱정스럽다. 기간한정 이방인인 ‘여행객’일 때는 영영 이렇게 살지 못하는 게 통탄스러울 뿐인데 말이다.
모든 게 'It depends'
반대로 여행객이라서 고통이던 시절도 있었다. 교환학생 시절 나는 5월 말에 학기가 끝나는데 8월 귀국으로 항공편을 끊었다. 3개월을 마땅한 거점도, 거처도 없이 여행을 하겠다고 나선 미친패기의 23살이었다. 문제는 충분한 돈이 없었다. 매일매일 특가 한인 민박이나 땡처리 호스텔로 연명했다. 숙소에서 제공되는 조식을 배가 터지도록 먹고 점심은 걸렀다. 집에 너무 가고싶었는데 변경 발권할 돈도 없어서 강제로 여행을 했다. 빈곤한 이방인은 고달팠고, 토박이가 되는 한국 땅에 가고 싶었다.
코타키나발루에서의 나는 돈 걱정 없이 먹고 놀 수 있다. 한국에서 이방인으로서의 시간을 견딘 대가로 받는 봉급이 일년에 한 두번 여행을 가기에는 충분하니까. 그러다보면 ‘이렇게 적당히 살다가 여행이나 다니고, 평소엔 일하는 것도 그런대로 괜찮은거 아닌가?’ 싶다가 ‘언제까지고 이렇게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문득 들고야 마는 것이다. 어떤 날은 기분이 좋아서 그런대로 괜찮은 삶인 것 같고, 어떤 날은 회사 일이 너무 거지같아서 이렇게는 못산다 싶어지는 것조차.. 결국 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셈이다.
내 마음조차 상황에 따라, 내 기분에 따라 많은게 달라진다. 그러다보면 결국 모든 게 내 마음먹기에 달렸다 싶어진다. '원영적사고'로 한 주 한 주를 또 열심히 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