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서울의 방 한 칸에서 홀로 산지도 벌써 10년이다. 대학생 때는 하숙집에서 보낸 한 학기를 제외하고는 졸업할 때까지 기숙사 생활을 했지만 방 한 칸이라는 것은 변함 없었다. 학기가 끝나면 빠르게 짐을 싸서 고향 집으로 택배를 부쳤다. 다년간의 기숙사 짐 빼기 경험으로 얻은 게 있다면, 누구보다 이삿짐을 빠르게 쌀 수 있게 되었다는 능력 정도일 것이다. 머물 곳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부터 내가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방인의 머묾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도.
방 한 칸이라도 기댈 곳이 있다면 그 자체로 감사한 일이겠지만, 내 몸을 눕히는 이 공간의 크기는 늘 아쉽다. 아쉬운만큼 최대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살아야 한다. 하지만 내 수많은 물건들은 이 공간을 비효율적으로 만든다. 하루만 안 치워도 티가 팍팍 나는 아쉬운 크기의 집을 바라보다가 문득 내가 들인 물건들의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졌다.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잣대
나는 무언가를 살 때 쓸모 있는 물건인지, 쓸모없는 물건인지를 꼭 고민하고 결정한다. 하지만 내가 사들인 물건들로 가득 채워진 집을 보면 고민을 한 게 맞나 싶다. 내가 생각하는 쓸모 있는 물건은 생활을 영위하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이다. 쓸모없는 물건은 없어도 삶에 지장이 없는 것일 테다. 그렇다면 내가 구입한 물건들은 모두 쓸모 있는 물건인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냥 사고 싶어서 산 게 더 많은 듯하다. 다만 합리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달렸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이 정도는 꾸미고 살아야 하니까.’, ‘운동은 장비가 좋아야 하니까.’, ‘이 가격인데 사지 않으면 합리적이지 않으니까.’ 등 수많은 구매 이유들이 있다. 그러고 나서는 나는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다.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절대 사들이지 않는 것들은 있다. 아기자기한 장식품이나 인테리어 소품 등은 취미도 없을뿐더러 먼지 쌓이는 게 싫어서 사지 않는다. 피규어 같은 단순히 눈이 즐거울 뿐인 무언가를 수집한다는 것 자체에 큰 욕망이 없다. 이런 종류의 물건을 수집한다는 것은 쓰레기를 늘리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여행을 가서도 값비싼 밥은 잘 먹고, 경험하는 데에는 그게 얼마이든 돈을 아끼지 않지만 기념품 가게에서는 몇 천원을 아쉬워하는 것이다.
건담은 정말 쓸모가 없었다
이런 내 기준에서 최악의 쓸모없는 물건을 산 적이 있었다. 바로 한정판 건담이다. 몇 년 전 시간이 좀 지나면 10배가 넘는 가격에 되팔 수 있다는 X의 말에 혹해 충동적으로 구입했다.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이나 굿즈도 그 돈을 주고 산 적 없다. 건담 애호가들이 들으면 ‘그 정도야 뭐.’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 기준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좀 흐르고 코엑스를 지나가다가 충격적인 현장을 마주했다. 당시 한정판이라고 광고했던 그 모델을 또 팔고 있는 게 아닌가! 속았다는 생각에 화가 솟구쳤지만 이미 샀고 시간이 흘러버린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되팔려고 포장도 안 뜯고 내가 산 건담이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았는데 한 순간에 계획이 어그러진 것이다. 당시 같은 목적으로 구입한 X와 함께 푸념하고 웃으며 넘겼지만 아직도 손에 꼽히는 최고의 황당한 소비다. 이 사건 이후로 한동안 쓸모 있는 물건과 쓸모없는 물건을 구별하는 것에 더욱 엄격하게 굴고는 했다.
쓸모없음의 쓸모(無用之用)
어느 날 집에 있는 쓸모없는 물건을 버리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집을 뒤엎은 적 있다. 온갖 잡동사니들이 굴러 나왔다. 소비에 그렇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었음에도(어쩌면 엄격하지 않았을지도) 잡동사니들이 집을 잡아먹을 기세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런 것들을 살 돈을 모았으면 주식 몇십 아니 몇백 주를 더 샀겠다며, 다시는 쓸모없는 물건을 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쓸모없는 것은 다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겠다고 호기롭게 정리를 시작하며 내 소비를 반성했지만, 이는 사실 잠깐이었다. 물건을 정리하며 어떤 것은 과감하게 쓰레기통에 던졌지만 대부분은 사소하리만큼 작은 이유들에 의해 끝까지 버리지 못했다. 오히려 쓸모없는 것들에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 미련이 남았다. 쓸모없는 것들이 주는 추억 덕분이었다. 생필품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삶을 생필품으로만 구성할 수는 없는 거였다.
나는 파리의 어느 길목에서 1유로를 주고 산 에펠탑 모형의 먼지를 닦고, X가 아주 귀한 돌이라며(귀함의 진위여부는 아직까지 확인하지 못했다.) 건네주었던 작은 돌의 자리를 새로 마련해주며 생각했다. ‘결국 잡동사니에 추억이 있어 버리지 못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것을 쓸모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나? 내 삶에 이런 물건이 하나도 없다면 제대로 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삶이란 게 결국은 쓸모없는 것들이 지니고 있는 추억을 동력 삼아 굴러가는 것임을. 사실 내 삶은 수많은 쓸모없는 것들과 약간의 쓸모 있는 것들로 이루어진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