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가나 선거 이야기 뿐이다. 여기저기 붙은 벽보, 주렁주렁 달려있는 현수막, 들이차는 우편함 같은 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곧 선거구나~’ 싶어진다. 그리고 선거철이라는 게 가장 실감나는 순간은 지역구 출마자들이 거리로 나와서 나에게(라고 읽고 불특정 다수에게) 인사하는 모습을 마주할 때다.
고향 원주에 다녀온 뒤, 성남 터미널에서 집으로 가려던 때였다. 분당 지역구 출마자를 마주쳤다. (나는 분당 을 선거구에 살지만) 분당 갑 출마자 이광재였다. 어? 뭔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 원주 국회의원이었는데? 강원도지사였는데?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옆에 있는 학교 나왔는데? 등등. 모든 의문을 요약하자면 이거다.
‘저 사람 왜 여기(원주가 아닌 분당에) 나와있어?’
마음이 불편했다. 저 사람은 강원의 아들인데! 왜 여기와서 이러고 있는가!? 인물 없다는 강원 정치인 중에서 그래도 유일하게 전국구 인지도를 가진 인물인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느냔 말이야! 원주를 위해! 강원을 위해 열심히 일해줘도 모자를 판에!
난 분당구에 살고, 성남의 성실한 납세자다. 분당 을 선거구민이고 사전투표도 이미 마쳤다. 그러나 여전히 난 내가 원주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제도가 규정하는 ‘어느 곳의 시민’이라는 값과는 다른 인식이다. 그러니까 이광재를 보고 느낀 불편함은 일종의 인지부조화였다. 분당에 사는 내가, 분당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하는 저 사람이 왜 이상하다고 느껴질까? 그 사람은 분당이 아닌 내 고향 원주를, 강원도를 위해 일하는게 더 합당해보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게 더 내게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전혀 관계도 없는 지역에 와서 국회의원 시켜달라고 하는 게 우습고 이상해보인다. 비단 이광재만 그런 게 아니다. 옆단지에 사는 걸로 알려진 이재명은 인천 국회의원에 나가있다. 마이너스 삼선 노원구의 아들 이준석은 뜬금없이 동탄에 출마해있다고 한다. 이광재 매치업인 분당갑 출마 안철수도 원래는 노원구 지역구를 가진 국회의원이었다. 내가 아는 것만 이정도라면… 배지를 달기 위해 뜬금없는 곳에 나가있는 사람이 수없이 많겠지?
그들에게 어떤 ‘지역구’라는건 전혀 중요치 않은듯하다. 설령 이방인이어도 상관이 없는 것 같다. 그냥 여의도라는 제 고향, 혹은 지향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거 같이 보인다.
정치허무주의 혹은 냉소주의가 정말 안좋다는 걸 알고있지만, 매번 갱신되는 역대급 비호감 선거들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 단면에는 모로가도 여의도로만 가면 된다는 수많은 정치토박이들의 몰염치가 있었다. 선거철에 반짝 본인과 관계도 없는 곳에가서 읍소하는 저런 여의도 토박이일 바에는 역시 그냥 이방인인 편이 낫지 않나 싶어진다.
어떤 사람을 여의도의 토박이로 올려보낼 것인가. 그 결과가 내 손에 일부 결정된다는 게 필요 이상으로 막중하고, 때론 말도 안되게 느껴지기도 한다. 피땀흘려 쟁취해낸 이 권리가 마땅히 잘 쓰이고 있는가 하는 의문도 든다. 이 지역에 전혀 일체감이 없는 후보, 이 지역에 전혀 일체감이 없는 유권자 조합이라니. (그럴리 없지만) 분당 망한거 아닌가..? 싶어지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움직이는 건 냉소보단 호의, 허무보단 실행일테다. 분당이든, 원주든 작은 한 표로 해낼 수 있는 것들이 쌓여가겠지. 그렇게 세상이 좀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며 두 장의 종이를 상자에 넣어두었다. 어떤 방향으로든 내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