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에 시달렸다. 핑계지만 그래서 영 글도 쓸 수 없었고, 글을 써야겠단 마음도 들지 않았다. 외면하고 싶었고, 하기 싫었다. 서른 둘이 되어서야 알게된 사실인데 나는 겨울에 계절성 우울에 좀 빠지는 편인듯하다. 일조량이 줄고, 몸은 움츠러드는 계절에 누구보다 영향을 받는 사람이었던거다. 게다가 겨울의 초입부터 있었던 하수상한 일들은 여전히 진행중이고 뉴스를 볼 때면 숨이 막혀온다. 그럼에도 이제는 입춘이 지났고 경칩이 지났고 더 이상 이러고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마음을 바꿔먹은 계기는 가족의 건강 이슈다. 아버지가 연말부터 계속 아파하시더니 결국 3월 초 수술을 하셨다.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 와중에 나는 상해 여행을 잡아놔서 맘이 더 편치 않았다. 여행은 즐거웠으나 마음 한 켠엔 계속 돌덩이가 앉은듯했다. 상해에서 돌아온 다음 날 아버지가 수술에 들어가셨다. 그리곤 중환자실, 집중 치료실로 옮겨졌다. 주말 이틀 일정을 조정하고 부랴부랴 원주로 갔다. 계속해서 옆을 지킨 엄마는 지쳐있었다. 큰 수술을 마친 아빠는 계속 이런 수술인줄 알았으면 안했을거란 말을 반복했다. 빼빼 말라가는 아빠는 죽을 반도 채 못드셨다. 약은 어찌나 많던지 밥을 먹다가도 약 양을 보면 체할거 같다는 아빠 말이 이해가 됐다.
매일같이 내 삶이 이방인 같다고, 닻을 내리지 못하는 배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내 삶은 그럭저럭 안정적이었고, 잘 굴러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가족이 아픈 이 순간에 내 삶이 정말 닻이 없는 상황이란 생각이 든다. 일하다가도 문득문득 걱정되어 전화를 걸고, 집중하기가 어렵다. 병원에서 엄마와 교대한 5시간 동안 안절부절하며 아빠 주물러줄까? 불편해? 물 갖다줄까? 밥 좀만 더 먹자. 약 쪼개줄까? 온갖 걱정과 염려를 쏟아냈다. 모두가 그럭저럭 살아가고 건강한 가족이라는 게 정말 든든하고 튼튼한 울타리였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그런 가족이 있는 한 내 삶은 언제라도 닻을 내릴 곳이 있었다는 걸. 이제는 다시 닻을 내릴 가족이 되기 위해 다함께 노력해야하는 순간이라는 걸 안다.
그렇게 이틀 아빠를 보고, 다시 내 집에 돌아왔다.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다는 건 삶이 뿌리째 흔들리는 순간이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프고 고된데다 회복이라는 과제도 산더미같다. 언니는 의연하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해줬다. 그것도 참 맞는 말이다. 그래야 정말로 필요할 때 우리의 자원을 꺼내 아픈 가족을 도울 수 있으니까. 그러려면 돈도 있어야하고, 직장도 갖고 있어야겠고, 든든한 보험도 있어야 하는 거였다. 무기력하다고 주저 앉아있으면 결국 아무 도움도 못되는 거였다. 정신을 차려야만 하는 때인 것이다. 나는 내 삶을 잘 살아가고,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자원을 획득하자. 그리고 언제고 꺼내주자. 그렇게 우리는 진짜 가족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