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언니와는 언론고시를 하면서 알게됐다. 같이 공부했던 언니는 한 회사에 합격해 기자가 됐고, 나는 연거푸 고배를 마시다 다들 알다시피 다른 일을 한다. 그녀는 직군을 바꾼 채 여전히 언론계에 몸담고 있고, 나는 회사가 여러번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게임업계에 있다. 언니와는 늘 언론이라는 섹터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는데 그날도 그런 평범한 대화를 하던 날이었다. 내게 언론이라는 산업, 기자라는 꿈은 애증이다. 나는 언론산업 종사자가 되고 싶다는 데 꽤나 진심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그때를 생각하면 많이 아프고 힘들고 고생스러웠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마냥 밉지만도 않다. 정확히 딱 ‘망한 짝사랑’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생각하고 있다보면 언제라도 미련이 남는다. 졸업하고 2년을 쭉 기자 준비만 했다보니 교류하는 친구들이 대부분 현직 언론인이다. 평범하게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마다 이루지 못한 내 꿈에 대해 강제로 생각해야하곤 했으니까 더 그랬을지도. 기렉시트니, 미래가 없느니, 침몰하는 배라느니 하는 말들도 가끔은 그저 부러웠다. 그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끝까지 버텨서 기자가 됐다면. 해보니 너무 안맞아서 혹은 미래가 없어서 그만둔거라면. 그렇게 다른 길을 찾다 지금 일하는 분야에 왔다면 어땠을까. 물론 인생에 만약은 없고, 설령 그랬다해도 인생의 방향은 많이 달라져 지금에 이르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명백한 사실은 내가 큰 좌절을 겪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정말 오래도록 꿈꾸던 일에. 내가 언제부터, 그리고 왜 기자가 되고 싶었을까?를 생각하면 명확히 특정하기 어렵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 일을 늘 나는 하고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원하던 일에서 2년을 매일같이 까였다. 최종 면접 그 한 끗을 계속 못넘고 말이다. 그 일은 당시에도 큰 좌절이었고, 지금도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 그건 숨쉬듯 당연해서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나는 내가 이렇게 취미생활을 많이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다니는 게
어떤 큰 좌절을 격은데에 대한 반작용인 것 같아.
사실 기자라는건 소위 워라밸 같은 건 접어둬야하는 일이잖아.
그래서 난 기자 준비를 하면서 충분히 그걸 각오했고.
근데 그게 좌절되면서 기꺼이 희생하려했던 내 시간들을 알차게 써야겠다 생각하는 것 같아”
이렇게 말했을 때 언니의 반응은 생각지도 못한 쪽이었다. 본인이 어떤 좌절을 겪었다고 인정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게 인상깊다고 했다. 그게 정말 대단해보인다고.
언니는 내 언시 기간이 어땠는지, 어떤 큰 좌절을 겪었었는지. 왜 결국 그 꿈을 최종적으로 접고 다른 업계로 갔는지 등을 다 보고 들어온 가까운 동지이기도 했다. 그러니 오히려 그 좌절을 드러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당연히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내딴에는 그 말을 꺼내는 것이 물흐르듯 편안한 흐름이었다. 그때 대단하다는 언니의 말에 나는 “그냥 내가 기자가 못 된 건 사실이니까”라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척 말했지만 살짝 울컥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무튼 좌절을 드러내는 일이 대단하다는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와 어느정도 가까운 거리를 지닌 사람들은 모두가 내가 기자 준비를 하다 게임업계에 왔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좌절을 알리지 않으면 사실 내가 왜 게임엔 크게 관심이 없는지, 심지어는 잘 모르는지.. 그러니까 왜 이 업계에서 나는 영영 이방인인지 설명하기 어려워지니까였다. 좌절을 드러내는 일은 언니 말처럼 대단한게 아니라 그저 초라한 방어기제나 합리화가 아닌가 싶었다. 방어하려던 어떤 부분을 들켰으니까 눈물이 났을테고. 집에 가는 길에 대화를 곱씹다보니 그런듯했다.
그 좌절은 여전히 나에게 큰 영향력이 있다. 아마 영영 그럴 것 같다. 그래서 그 미련과 좌절을 떨쳐내기 위해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할 수 있겠느냐고 하면 쉽지 않다. 5년이 흐르면서 이미 손에 쥔 것들이 너무 많이 생겼다. 그냥 여우의 신포도를 바라보고 가끔식 정신승리도 하고 망한 첫 사랑은 영영 가슴에 품는 수밖에 없나. 그렇게 생각하니 또 마음이 답답하다. 어쩌면 내 좌절은 단순히 '기자가 못됐다' 그 자체보다 더 큰 게 아닐까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