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MBTI와 같은 성격 유형 검사나 심리테스트를 즐겨 한다. 내 MBTI는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특성이 큰 ESFJ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는 여러번 해도 ENFJ가 나오는데, N들은 나를 S라고 하고, S들은 나를 N이라고 한다. (나는 무엇인가....) 어쨌든 E 특성에 걸맞게 누군가를 만나고 함께 어울리는 것을 즐기며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한다. 전형적인 바깥에서 에너지를 얻는 스타일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완벽하다고 느꼈던 하루는 대개 사람들과 어울리고 난 후인 듯하다. 살면서 크게 완벽하다고 느끼거나 크게 완벽하지 않은 하루가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그 기분이 생생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왁자지껄하게 모임을 즐기고 난 후에는 대체로 ‘오늘 하루 즐거웠다’라고 생각한다.
원래도 사람을 만난 후 불 꺼진 집에 들어서면 외로움을 느꼈지만, 어느 순간부터 공허함과 외로움을 더욱 크게 느끼기 시작했다. 한 번에 많은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공허함의 크기도 커졌다. ‘나는 원래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이니까’라고 생각하며 넘기기에는 감정 소모가 매우 컸다. 감정 소모 없이 그저 즐겁고 완벽한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완벽한 하루를 갈망하던 어느 날, 주말을 온전히 혼자서 보내게 되었다. 흔치 않은 일이다. 평소에는 일정이 비어있는 게 싫어 어떻게든 약속을 욱여넣고는 했기 때문이다. 항상 약속에 치이듯이 지내서인지 나에게 주어진 주말이 평소보다 길게 느껴졌다. 주말을 그저 그렇게 보낼 수는 없지! 혼자 보내는 이 시간을 누구보다 완벽하게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주말에는 보통 점심시간 전까지 늘어져 있는 편이지만 오랜만에 부지런한 주말 아침을 맞이했다. 환기를 시키고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청소를 시작했다. 밀린 빨래를 끝내고 책상 정리도 했다. 혼자 있을 때는 식사를 대충 때우지만 그날은 밖으로 나갔다. 백화점을 한 바퀴 돌고 좋아하는 초밥 가게에서 점심을 먹었다. 스타벅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료인 자몽허니블랙티(클래식시럽 빼주세요)를 들고 따릉이를 빌려 한강 공원으로 나갔다. 혼자서 자전거를 타러 한강 공원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기분이 괜찮았다. 오히려 누군가를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나의 속도를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해가 저무는 시간까지 오롯이 나의 시간을 즐겼다. 하늘이 붉게 물들었을 때 공원 한편에 자리 잡고 앉았다.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노을을 바라볼 때면 언제나 새로운 기분이지만 이런 시간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하는 것을 알고 나서는 더 좋아졌다. 시적인 표현이 좋다. (개와 늑대의 시간 드라마 아는 사람...) 어둠으로 옮겨가는 불분명한 경계의 시간,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바꿔주는 시간이다. 의식해서인지 그날따라 한강이 낯설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와 어둠에 휩싸인 방안을 마주했을 때 공허함과 외로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루 종일 혼자 지냈다고 해서 외롭지도 않았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오히려 충전이 된 느낌이었다. 마무리로 자기 전 맥주 한 캔과 좋아하는 드라마의 조합도 완벽했다.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 될 뿐이었다.
내가 생각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눈치 볼 필요도 없고,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냥 오로지 ‘나’만 생각하면 된다. 평소 호오(好惡)의 분명함이 크지 않은 편인데 나 자신만 생각하면 되니 의사표시가 분명했다. 그때 완벽한 하루는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나 중심은 내가 돼야 하는데 그게 항상 어려웠다. 누구에게 기대야 할 필요가 없는데, 내가 만들고 느끼면 되는데, 간단한 것 같지만 어려웠다. 혼자서 잘 있을 수 있어야 둘이서도 잘 있을 수 있다는데. 이걸 깨달은 이후로 혼자 있는 시간을 스스로 잘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 누군가 내게 다가왔을 때 그 시간을 더 소중하고, 행복하게 여길 수 있도록. 마음 먹은 것처럼 이 시간들을 잘 보내 온건지, 지금 둘이 있는 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중심을 잃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그날의 한강을 떠올리려 한다. 오로지 나 하나로 완벽했던 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