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24학번이라니 열네번째 닻 없는 날, 새내기가 된 31살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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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학번이 되었다. 나는 이번 가을부터 대학원생이란 신분이 하나 더 생겼다. 달라진 점은…온갖 단톡방이 생겼다. 전체 원우방, 동기 원우방, 신입생 환영회에서 한 테이블이었던 동기들과의 방. 이런 경험 딱 11년 만이라 뭔가 아득해졌다. “자 이제부터 너희는 ‘동기’다. 술 마시고 자기소개하고 친하게 지내도록! 지금 친해진 사람들이 계속 가게 된다. 이상!” 이라고 누군가 직접 말하진 않지만, 끝없이 느껴지는 그 기류에 쌓여가는 피로감과 묘한 긴장감이 오랜만이었다.
어쩌다 서른한 살의 나이에 대학원생이 되었나. 하는 일에 대한 불만족 때문이다. PM이라는 일, 게임이라는 도메인. 어느 것에도 마음에 붙이지 못한 자의 도피다. 영영 이렇게 남 딱가리나 해주다 회사 생활이 끝나겠구나! 하는 불안의 결과다. 천생 문과 정치학사, 행정학사면서 게임업계에서도 일하는데 전직이라고 왜 못 하겠냔 객기도 있었다. 범IT계열에 있으면서 데이터가 결국엔 21세기의 모든 자산의 근원인 것같다고 생각했고, 나도 내 기술을 가져야겠단 결심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데이터 분석가가 되겠다고 ‘빅데이터학과’라는 데에 입학해버린 것이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렇게 싫어하던 공부에서 다시 살길을 찾아보는 아이러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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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새내기와 31살 새내기 사이의 간극
전업 대학원생을 할 용기도, 열정도 없고. 그러기엔 당장 월급이 끊기면 생활이 안되는 한달살이기에 야간으로 운영하는 특수대학원에 진학했다. 아마 이건 다른 동기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게 모인 33명의 24년도 후기 입학생들.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동기라는 이유로 친밀감을 느껴야 하고, 의지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을 소개하고… 11년 전과 다른 점이라면 우리의 질문이 “어디에서 왔어?”가 아니라 “어떤 일 하세요?”라는 점. “몇 살이야?”가 아니라 “몇 년차예요?”라는 거. 서로를 알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가 시기에 따라, 상황에 따라 비슷한 듯 판이하단 게 새삼 신기했다.
서로 어떤 수업을 듣는지, 이 수업은 괜찮은지 나쁜지. 추천할 만한지 아닌지. 이 수업을 왜 듣는지, 어떤 걸 기대하는지. 논문을 써서 졸업할 건지 학점 이수로 졸업할 건지. 석사를 따서 뭘 할 건지. 아직 동기들과 나누지 못한 대화가 많다. 아직 서로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 20살이던 나는 그렇게 만난 낯선 이들을 좋은 사람이라 믿고 의지하는 용감한 아이였다. 반면 지금의 나는 새 사람을 만나 소통하고 어울리는 게 영 기쁘지만은 않고, 알아가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이 들거나 호기심이 들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문득 내가 어떤 부분을 잃어버렸구나, 세상살이에 닳고 닳아버렸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씁쓸한 기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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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1주 차 후기
9월이 되었으니, 개강도 했다. 오랜만이었다. 버스를 타고 학교로 향하고, 수업에 늦을까 노심초사하고, 처음 와보는 건물에 길을 헤매고, 누구 아는 사람 있나~ 없나~ 긴장하며 교실을 살피고, 낯선 전자출결앱을 실행시켜 보고, 교수님이 떠먹여 주는 지식을 얌얌 받아먹는다. 그러면서 학생과 직장인의 삶이란 얼마나 다른가 체감한다. 교수님이 앞에 있고, 나는 그저 책상에 앉아있기만 하면 된다. 남이 퍼주는 걸 받아먹기만 해도 된다는 점은 새삼 즐거웠다. 회사에선 하루하루가 고군분투. 내가 다 떠먹어야 하는 일투성이인데 말이다. 그러니 학교엔 돈을 내고, 회사에선 돈을 내게 주는 건가 했다.
내돈내산 학기당 700만 원짜리 공부인데(심지어 첫 학기다 보니 입학금 포함 800만 원을 넘게 냈다), 열심히 하지 않을까? 이건 큰 착각이었다. 개강 첫 주에 풀강의 하는 교수님은 원망스럽고, 첫 주는 오티라며 지각하시곤 30분만 있다가 가신 교수님이 좋았다. 돈을 얼마를 내든 수업은 안 할수록 좋은 게 학생일 땐 당연한 건가 싶다. 이런 면에서 나는 20살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듯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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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대학원 원우’라는 이름으로 내 삶에 진입했다. 이런 경험이 너무 오랜만이라 혼미하고, 새로 하는 공부는 모든 게 낯설고 어렵지만, 되찾아본 학생 생활은 일면에 즐거움이 있다. 직장인과 학생이라는 두가지 포지션을 성공적으로 병행하겠다는 나의 결연한 마음이 5학기 동안 건재하기를 꼭 바라본다. 어떻게든 이번 학기에는 학생이라는 새 신분에 정을 주고, 마음 붙여가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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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지지난주 펑크난 거 아무도 모르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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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노닻 | we.are.anchorless@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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