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다 열세번째 닻 없는 날,
달리기를 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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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붐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에 진심이라니 놀라울 정도다. 나는 올해 4월에 우연하게 러닝을 시작해, 계속해서 달리고 있다. 직장인이 되고 살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가 이젠 움직이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사람이 되었는데, 러닝은 뭔가 진입하기 어려운 종목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달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달리기에는 영 소질이 없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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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처럼 달려야지
수영 1년, 발레 9개월, 웨이트 4년, 테니스 1년으로 이어져 온 내 운동일지는 요즘 러닝을 열심히 기록 중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처음으로 나도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달리기가 루틴이라니 뭔가 멋있었다. 하루키처럼 매일 달리고, 매일 정해놓은 분량의 글을 쓴다면 나도 대작가가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은 한달에 한번 쓰는 글도 매번 시간에 쫓겨 쓰고 있다.)
하루키처럼 달려야겠다고 다짐할 즈음 바디프로필을 앞두고 있어 겸사겸사 아침 러닝을 시작했다. 체지방 태우는 데에는 공복 운동만한 게 없으니 일석이조였다. 또 우연히 함께 달릴 메이트도 만나게 돼서 그래, 딱 일주일만 해보자고 다짐했다.
대망의 러닝 첫날, 예전에 사둔 러닝화와 편한 옷을 주섬주섬 꺼내 입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약속 장소는 광진교. 운이 좋게도 집 앞이 한강이니 달리기를 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광진교를 넘어 천호대교로 돌아오기로 하고, 일단 멈추지 않고 뛰는 것을 목표로 했다. 러닝 메이트가 자세도 봐주고 조언도 해주면서 함께 달렸다. 뛰는 내내 말을 걸어서 숨이 찼지만 훈련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아침 러닝을 하며 부지런한 사람들이 정말 많음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한강을 따라 달리고 자전거를 타며 운동하고 있었다.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니 자극이 되었고, 처음으로 멈추지 않고 4km를 달리고 나니 너무 뿌듯했다. 샤워를 하고 출근하는 길이 개운하고 즐거워 스스로가 놀라웠다. 출근길이 즐겁다니, 너무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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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면서 행복을 찾았다
그 후로 매일 러닝 메이트와 함께 달렸다. 달리는 코스를 바꿔가며 뛰니 늘 새로웠다. 한강 다리를 뛰고, 잠실 방향으로 뛰어보고, 암사대교 방향으로도 뛰었다. 또 거리를 조금씩 늘리고, 러닝 페이스도 올리며 변화를 주었다. 달리다가 문득 하늘을 보면 아침을 여는 하늘이 너무 예뻐 행복했다. 봄날에 맞게 흐드러지게 핀 꽃들도 아름다웠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조금만, 조금만을 되뇌이며 달릴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완주하고 잠시 쉴 때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그 순간이 행복하고, 건강한 내 몸과 아름다운 서울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과장하는 것 같지만 작은 것에도 행복을 잘 느끼는 나는, 작은 것들로 인해 달리는 매일매일이 행복하다.
행복은 하다만, 사실 힘들어 죽겠는데 러닝 메이트가 자꾸 말을 시켜서 더 힘들었다. 그래도 매일 아침 함께 달리면서 끝없이 이야기를 나눴더니 장점이 많았다. 1) 폐활량이 좋아진다. 말을 하면서 달리니 호흡이 쉴 틈이 없다. 의도치 않게 고강도 훈련을 한 것 같다. 2) 정이 든다. 러닝 메이트와 정 들어서 연인으로 발전했다. 러닝이 가져다 준 최고의 선물이 아닌가싶다.
첫 일주일을 견디니 몸도 적응이 돼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수월해졌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러닝 메이트와 함께 계속해서 달리고 있다. 러닝도 장비가 중요했다. 좋은 러닝화, 러닝 쇼츠, 러닝용 하이서포트 속옷, 러닝벨트, 헤어밴드 등 웬만한 건 다 구비했다. 이제 러너들은 모두 가지고 있다는 가민 스마트워치만 사면 될 것 같다. 애플워치가 있지만 가민은 탐이 난다. 몸과 신발만 있으면 달릴 수 있으니 소비할 게 많지 않은 운동이라 생각했는데 웬걸, 역시 운동은 장비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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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달리냐고요?
주위에서 달리면 무엇이 좋은지, 달리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종종 묻는다. 사실 아무 생각이 없다. 러닝 메이트가 열심히 말을 걸어오던 때도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은 ‘힘들다’였다. 요즘 우리는 노래를 들으며 각자 페이스에 집중하며 달리고 있는데, 달리는 내내 힘들다는 생각과 아무 생각이 없는 순간을 반복한다. 그냥, 그냥 달리는 거다. 그래서 달리기를 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다. ‘없음’의 상태를 즐기기 위해 뛰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때로 너무 많은 생각에 지치기도 하니까. 달리면 모든 게 단순해진다. 내 머리를 가득 채우던 고민들도 달리는 순간부터는 뒤로 밀려난다. 일단 다 뛰고 생각해보기로 한다. 고요해지기 쉽지 않은 세상에서 고요함을 마주하는 순간은 무척 귀하다.
무엇이 좋은지, 운동의 효과는 직접 체감해봐야 한다. 일단 살이 잘 빠진다. 바디프로필 준비로 아침 러닝, 저녁 웨이트를 했더니 몸무게가 하루에 1kg씩 내려갔다. 공복 러닝은 엄청나다 정말. (물론 체중 감량의 8할은 식단이다...) 또 체력도 좋아진다. 오랜 시간 꾸준히 운동을 해서 체력이 좋은 편이지만 쉼없이 뛰는 것은 다른 영역이었다. 그래도 매일 하니까 늘더라. 4km, 5km… 10km까지! 체력이 좋아지고 있음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러닝을 끝내고 나면 하루가 힘들 것 같지만, 오히려 개운하고 하루를 더욱 뿌듯하게 살 수 있다.
더 열심히 해보기 위해 마라톤 10km 60분 내 완주 목표를 세웠다. 사람이 성장하려면 역시 목표가 있어야 한다. 마라톤은 몇번 참가해봤지만 늘 완주만을 위한 참가였다. 이번 춘천마라톤 10km는 처음으로 페이스 목표를 가지고 나가는 마라톤이다. 연습해야지,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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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는 나를 단순하게 만든다. 이렇게 뛰면 어깨가 덜 아프고, 발이 편하고, 이런 호흡이 좀 더 숨쉬기 편하구나. 이 정도의 고민 뿐이다. 눈앞의 목표를 바로 해낼 수 있어 성취감도 크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며 달리다가 우연히 마주한 자연의 아름다움에 소박한 행복을 느낄 때면 또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이렇게 달리기를 통해 한 뼘 성장하고, 삶에 감사하며 작은 행복을 발견하고 있다. 자, 그럼 내일도 힘차게 달려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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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노닻 | we.are.anchorless@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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