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번째 닻 없는 날,
빛나는 시간 속 늘 우리 함께였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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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6월 22일~23일)에 페퍼톤스 콘서트를 다녀왔다. 무려 양일 이틀을 다 갔다. 요 몇년 간 페퍼톤스 단독 공연은 빼놓지 않고 갔고, 페스티벌로도 꽤 보러 갔다. 그런 와중에도 단독 공연 양일을 다 간 건 처음이었다. 2024년은 페퍼톤스에게 의미가 깊은 한 해이니까. 나도 미련 안 남게 한껏 즐겨야 만족스러울듯해서였다.
올해는 페퍼톤스의 20주년이다. 긴 세월 페퍼톤스를 들어온 내게도 경사스런 해일 수밖에. 내 언니는 페퍼톤스 데뷔 시절부터 그들을 좋아했는데, 정신차려보니 나도 같이 스몄다. 원래 동생에겐 언니가 좋아하는 건 다 좋아보인다는 법칙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아무튼, 20년간 한결같이도 그들은 부른다. 고되고 힘든일이 있어도 살아간다는 사실만으로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삶을 노래한다. 그 음악들로 나를 자라게 한 페퍼톤스의 이십돌. 어떤 텍스트로 전해도 모자랄 것 같은 벅찬 마음과 고마움을 한아름 안은 채 명화라이브홀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발걸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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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톤스 입덕기
페퍼톤스에 대한 첫 기억은 이거다. 언니가 사둔 페퍼톤스 씨디를 들으며, 가사집을 들여다본 것. 그때 태어나 처음으로 알았다. ‘노래 가사가 사랑 타령이 아닐 수도 있구나!’ 라는 걸. 초등학교 4학년쯤인 당시의 ‘나는 왜 모든 노래 가사는 사랑에 관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런 내 불만 혹은 의문을 깨부숴 준 것이 페퍼톤스였다. 그들은 스프린트를 앞둔 러너의 심정을 (Ready, get set, Go!), 지구 반대편 남반구에 대한 생각을 (남반구), 밴드 결성 시의 벅찬 마음을 모험에 빗대기도 했다 (세계정복). 그렇게 내 세계를 넓혀주었다. (위에서 언급한 노래들은 모두 정규 1집 Colorful Express에 실린 곡들이다.)
그렇게 알게된 페퍼톤스를 이 나이 되어서 훨씬 좋아하게 될줄은 몰랐다. 하지만 일견 당연한 일 같기도하다. 그들은 나이 들어 갈수록 무뎌지는 어떤 것들을 건드린다. 그들은 세월 속에 사람들이 등한시하고 소홀히하고 냉소하게 된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소중히 부른다. 예컨대, 희망, 밝음, 새시작, 설렘, 용기, 청춘. 이런 걸 매순간 들고온다. 서른 넘은 어른이 되어 듣다보면 일순간 울컥해서 눈물이 나는 순간들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시작하는 여행자에게 빌어주는 격려와 행운이라던가 (행운을 빌어요),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자에게 전하는 환대와 감사의 메세지 (긴 여행의 끝) 같은 걸 꼬박꼬박 받아먹고 있다보면 마음이 풍족해진다. 타인에게 바라긴 염치 없나 싶은 무조건적인 응원과 격려를 아낌없이 퍼주는 그들의 음악 앞에 나는 늘 빚을 지고 있단 생각이 든다. 내가 너무 게으르고 한량같을 때 "당장 모든게 변하진 않는다"며 "인생은 길고 노래는 참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뉴 히피 제너레이션) 그들에게 나는 삶을 살아갈 여러 기운을 얻고야 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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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20년 동안 지속한다는 건
어떤 일을 20년 동안 지속해온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는 아직 헤아려볼 수 없다. 내가 가닿지 못한 영역이기니까. 20년, 한 사람이 태어나 성인이 되는 기간을 그들은 한결같이 노래했다. 누군가의 무운을, 행운을, 청춘을. 그 점은 팬심을 넘어 인간적으로도 그들을 존경하게 한다. 나이들면 분명히 그런것들이 무뎌진다고 했던 것 같은데. 신보를 낼 때마다 나를 벅차게하고, 뛰게하는 음악을 가져온다. 그렇게 페퍼톤스에게 빚이 한 움큼씩 쌓여간다.
20주년 기념 앨범도 발매했다. 대부분의 트랙이 예전에 쓰였으나 모종의 이유로 내지 못한 것들이고, 몇 개의 신곡이라고 한다. 타이틀은 '라이더스!'. 듣자마자 이 노래는 떼창용이다! 싶어 이 노래를 다 같이 부를 콘서트 현장이 너무 기대됐다. 20주년의 타이틀이니까, 메세지도 딱이었다. 페퍼톤스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하라면 긴말 없이 이 노래를 들려주면 되겠다 싶은 완벽한 20주년 테마곡.
가슴 벅찬 오늘 무척 설레이던 내일
빛나는 시간 속 늘 우리 함께였네
영원한 것은 없다고 모두 말하지만
하늘은 아직도 푸르네 눈부신 바다를 꿈꾸네
밤새도록 멈추지 않는 우리들의 노래
오랫동안 꺼지지 않는 밤하늘 불꽃처럼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우리들의 노래
수많은 시간을 함께한 오랜 친구 가자 또다시
Oh-whoa, oh-whoa
음악에 온 힘 다해온 그들의 20년. 그 '빛나는 시간 속' 우리가 늘 함께였다고 말해주는 페퍼톤스에게 어찌 애호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랴. 영원한 것이 없대도, 나는 그런것은 모른다면서 하늘은 푸르니 눈부신 바다를 쫓는다는 그들의 낭만 앞에 나 역시 한없이 낭만적인 인간이 되고야 만다.
우리들의 노래는 밤새도록 멈추지 않고,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다는 가사가 콘서트 장에선 이미 실현된 느낌이 든다. 그들이 70살이 되어 내가 60살이 되어도, 그들과 함께라면 나는 언제고 영원히 낭만적인 청춘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내 인생의 OST. 내 인생의 음악감독. 페퍼톤스의 20돌을 진심 담아 축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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