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상 생활이 잘 안된다. 올해 발행한 모든 글들이 ‘암튼…뭔가 잘 안됨…’, ‘여의치 않음…’, ‘어려움..’ 이런 식의 글이었던 것 같아 민망하다. 그치만 이번엔 진짜다. 작년 한 해를 페퍼톤스 20주년에 모두 불태웠다면, 올해는 아마도 데이식스 10주년에 모든걸 불 태울 예감이 든다. 이제 곧 6월인데, 한 해에만 콘서트를 세번이나 갔으니 예감이 아니라 이미 현실이 됐다고 보는게 맞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그 중 한번은 해외였다.
연초의 ‘뭘 못하겠다’는 상태는 썩 긍정적이지 않았다. 무기력이었고, 가족의 건강에 대한 걱정이었고, 의욕이 없는 나에 대한 염려였다. 지금의 ‘뭘 못하겠다’는 상태는 긍정적인 이유때문이다. 데이식스의 영케이가 진짜 좋다. 뭐가 그렇게 좋냐고 물으면 좋아하는 이유를 담은 릴스를 하루 종일 보낼 수 있다. 제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도 좋고, 무대에서 에너지 넘치는 모습도 좋고, 데이식스의 노래를 책임진다는 점도 좋고, 데이식스의 노래들의 메세지도 참 좋고. 그렇다. 너무 좋아서 일상생활이 잘 안되는건 부정적일 수 있지만, 무기력보단 백번 낫지 않나!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건>
뭘 주제로 글을 써야할까 계속 고민했다. 회사는 요즘 무난하고, 대학원 생활도 적응했고.. 최근에 좀 크게 아프긴했는데 맨날 아프단 글만 쓰는거 같아서 그것도 좀 그랬다. 심지어는 열이 40도까지 올라서 응급실 다녀왔는데 다음날 데이식스 콘서트 다녀왔다. 진짜로 영케이 생각밖에 안하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라서 다른 주제로는 좀체 글이 안 나오고야 마는 것이다. 심지어 그렇게 아프고 콘서트 다녀왔더니 그 뒤로 씻은듯이 나았다. (이거 완전 데이식스 테라피 아니냐?)
뭔가를 좋아하게 되면 큰 장점이 있다. 일단 근로 의욕이 좀 고취된다. “데이식스 보러가려면 돈 벌어야지!”, “영케이 보려면 과금해야된다!” 하면서 말이지. 그리고 열심히 살아야겠단 생각도 든다. 내가 그들의 모든 면면을 알 순 없지만, 적어도 미디어에 비치는 모습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큰 성공한 쟤네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름의 자극을 받는거다. 데이식스는 정확히 내 또래인 밴드맨들인데…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같은 경각심이 살짝 드는 것이다. 적어도 나도 사회인으로서 부끄럽지는 말아야지 하는 마음도 한 켠에 생긴다.
<10대인 나와 30대인 나>
이런 건 10대 시절 아이돌을 좋아할 땐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다. 그때 내가 좋아했던 아이돌은 내 세계의 전부였다. 악플러들과 직접 나서서 싸우기도 했고, 과몰입도 심하게 했다. 그들과 날 동일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게 궁금했다. 지방에 살았던 나는 철없이 사생팬이 되고 싶단 생각도 했다. 저들 때문에 내가 열심히 살아야지. 돈 벌어야지 이런 생각을 안했던건 분명하다. “아 진짜 나는 꼭 슈퍼주니어랑 결혼해야지. 암튼..할거임” 같은 터무니 없는 생각은 했다.
뭔가를 새롭게 좋아해보니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어떻게 다른지를 알게된다. 16살때까지 열렬히 좋아했던 슈퍼주니어와 그 두배인 32살이 되어 열렬히 좋아하게 된 데이식스를 좋아하는 양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의 나는 콘서트는 맘만 먹으면 해외로도 가지만, 예전처럼 하루종일 ‘사이버 덕질’에 시간을 태울 순 없다. 하루종일 온새미로 친목방에서 글을 써대고, 온갖 게시물을 다 섭렵하던 나는 이제 없는 것이다. 모든게 궁금했던 10대 소녀는 잘 포장된 모습을 주로 보고싶어하는 30대가 된다. 내가 그들을 좋아하지만, 알고 싶지 않은 부분들도 있다는 걸 분명히 안다. 쉽게 모든 맘을 다 태우던 10대때와는 다르게 나의 경계선이 생긴 것이다.
이건 분명한 성숙의 신호인 것 같다. 30 먹고 철없이 뭔가를 너무 좋아한다고 고백하지만, 달라진 ‘덕질’ 양상을 보며 내가 조금은 철이 들었다는 걸 알게되는 아이러니인 셈이다. 이렇게 된 김에 그저 내가 좋아하는 그들의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며 그로써 행복하고싶다. 이렇게 또 다시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이 늘어났다고 친구들에게 고백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