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첫 인사 드리게 되어 반갑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써내려가고 있어요. 첫 시작인만큼 저희가 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지 말씀 드릴까 해요. 가볍게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제가 종종 입버릇처럼 읊조리던 말이 있어요. 나는 이 도시의 이방인 같다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인데요. 어느날도 친구에게 푸념하듯이 '나는 이방인이야'라며 이야기하다가 문득 이방인의 사전적 정의가 궁금한 거예요.
1)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
2) 유대인이 선민의식에서 그들 이외의 여러 민족을 얕잡아 이르던 말.
민족적인 측면에서 보면 저는 확실히 이방인은 아니죠. 누가 봐도 한국인이거든요. 그런데 저는 왜 자꾸 제가 이방인 같을까요.
늘 내 존재에 대해 고민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데, 다들 한 번쯤 이런 고민하며 사는 거 맞죠?
이 사회에서 저는 늘 어딘가를 부유하는 존재 같아요. 특히 스스로를 먹여 살리기 시작한 시점부터는 생각이 더 깊어졌어요.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목적지가 있을까?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나는 이 드넓은 우주를 떠도는 먼지' 라고 생각하며 끝없이 헤맵니다.(맞아요, 저는 N이에요)
서울에서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냈는데 한강에 홀로 앉아있을 때면 내가 이 도시에 속해 있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에 서글퍼져요. 종종 집도, 차도, 가족도, 애인도 없는 서울 땅에서 내가 왜 이렇게까지 발버둥 치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내 것이 아닌 내 집에서 나는 온전히 평안하지 못해요. 집에서도 온전히 가라앉힐 수 없는 마음이 밖에서는 오죽하겠나요. 한없이 부유할 수밖에.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느낌은 사람에게 안정감을 줍니다. 막상 학생일 때는 ‘00학교의 학생’이라는 타이틀이 큰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다는 걸 몰랐는데 말이에요. 사회에 던져지고 난 후에는 어디에 발을 딛고 서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회사를 울타리로 만들기 위해 회사 내에서 끝없이 존재 이유를 찾으려 했지만, 어느 순간 힘이 탁 풀리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 떠나는 겁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다시 고민을 시작해요.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이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꼭 닻을 내리지 못하는 배처럼 계속해서 떠도는 거죠. (저희가 노닻인 이유..)
이런 제 마음을 이해 받기 위해 누군가에게 부단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쓰기로 마음 먹었어요. 마음을 붙이지 못해 떠도는 존재들이 나 하나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아니 사실 내가 알고 싶어서. 나만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어서.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다"
어디선가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다” 라는 말을 보고 일기장 모퉁이에 적어두었어요. 드넓은 우주에서 사실 우리 모두 외계인인 것처럼 이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이방인일지도 모릅니다.
마음 붙일 집단을 찾아 헤매다가 우연히 속하게 된 곳에서 내가 이 무리의 영원한 구성원일 것 같은 느낌에 잠시 이방인임을 잊습니다. 하지만 그 관계는 머지않아 필연적으로 바뀌게 돼요. 관계는 변하고, 사이는 멀어집니다. 그러면 다시 이방인임을 잊게 만드는 곳을 찾아 헤매는 거예요. 모든 관계는 시간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기 마련이니까.
카뮈의 책 <이방인>을 최근에서야 읽었어요. 카뮈는, 사실 우리 모두는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완벽하게 이해받을 수 없는 낯선 존재라고 말하는데, 정말 맞는 것 같습니다. 어떤 관계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어요. 누구든지 언제든 서로에게 낯선 존재가 될 수 있는 거죠.
그러면 그냥 서로에게 위로라도 되어보자는게 결국 하고 싶은 말이었어요. 이방인끼리 손이나 좀 잡아보자구요. 힘들 때 곁에 있는 사람들이 내밀어준 손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기억하거든요. 저희의 글이 그런 위로가 되어주었으면 합니다.